
아침 4시 반에 일어났다.
휘리릭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나선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꽤 많은 차들이 줄지어 붉은색 빛줄기를 뿜는다.
생각해보니 지난 두 번의 유럽행에서는 모두 눈이 와서 엉금엉금 기어가야만 했다
그나마 맑은 날 이동하는게 다행이랄까.
인천국제공항은 새벽부터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스키와 보드를 타러 가는 사람들이 짐을 부치느라 체크인 줄은 줄어들질 않았고
보안검색은 24시간 하는 3번 게이트만 열려서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게 줄이 늘어져 있었다.
주말을 낀 금요일 새벽이 아니라 일요일 새벽의 풍경이라니 조금은 아이러니했다.
피란민 행렬 같던 보안검색 및 출국수속을 마치고 라운지에 들어서니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비행기도 매우 한가하여 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쾌적하게 느껴진다.
창가쪽 자리였다면 등을 대고 앉기 편했겠지만 옆에 누가 없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질은 훨씬 높아진다.
다만 두 세번 쪽잠을 잤음에도 끝나지 않는 14시간 비행에 목, 등, 엉덩이, 무릎 할 것 없이 아파오는건 어쩔 수가 없다.
책 읽는게 가장 시간이 잘 가길래 밀리의 서재를 재구독했는데 다운로드 받은 책들이 1권 빼고는 모두 오류다.
결국 22달러나 하는 기내 와이파이를 구매하였으나 톡이나 보내질 뿐 50메가바이트가 넘는 책을 다운받는건 역부족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입국심사 줄은 새벽 인천공항 마냥 길디 길었다.
중간에 새치기 하는 사람을 막느라 공항직원들은 소리지르기 바빴고, 온갖 나라말로 들리는 소음은 유럽에 왔다는걸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긴 기다림 끝에 입국심사관을 만났을 때 얼마나 머물거냐, 어디 가는거냐 등등을 물어보지도 않고 도장을 꽝 찍어준게 오히려 허무하게 느껴졌달까.
프랑크푸르트 역을 경유하는 기차는 오늘 혼돈 그 자체였다.
모든 열차가 지연되었고, 일부는 캔슬이 되기도 하였다.
나는 프랑크푸르크 공항역에서 드레스덴 신도시 역까지 직행기차를 예매했으나, 공항역부터 중앙역까지 구간이 캔슬되었다.
원래는 여유있게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기차를 탈 요량이었으나, 허겁지겁 빵쪼가리와 커피 한 잔을 들이키고 중앙역까지 가는 기차를 찾아 나섰다.
광역철도인 S-bahn은 공항 근처에 있었으나, 장거리 철도의 플랫폼은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짐을 끌고 헐레벌떡 뛰어야만 했다.
물론 10분 넘게 지연이 되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시간이 좀 남아서 중앙역 바깥으로 나와보았다.
기대한 것은 역을 나서자마자 크리스마스 마켓이 쫘악 펼쳐지는 풍경이었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역 앞은 홍등가로 유명했던 것 같고, 그래서인지 어느정도 길을 걷다가 흉흉한 분위기에 다시 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인데 거리에 장식이나 전구 하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나마 역 안에 있는 여러 장식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중앙역은 오늘 대혼잡이었다.
기차가 계속 지연이 되니 대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열차는 계속 플랫폼을 바꾸는 통에 사람들은 이리저리로 뛰어다녔다.
내가 탈 열차도 15분 지연에 플랫폼이 바뀐데다가 내가 티야할 칸은 제일 앞쪽이라서 행여나 열차를 놓칠까 전력질주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1등석 조용한 칸 정방향에 옆에 아무도 앉지 않았다는걸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가뿐 숨을 가라 앉혔다.
이제 4시간 반만 기차를 타면 된다.
열차는 서쪽 끝의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동쪽 끝인 드레스덴까지 독일을 횡단해 갈 것이다.
호텔에 도착하면 집을 떠난지 딱 24시간이 될 예정이다.
눈 오는 시기의 독일로의 여행은 쉽지가 않다.
